우리나라 산줄기에 대하여

 


◎백두 대간의 근원

한반도의 등뼈를 이루고 북에서 남으로 내달은 산줄기를 우리는 백두대간이라 부른다. 일찍이 대동여 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는 우리의 산 줄기를 이렇게 그려왔다. 1대간을 근간으로 정간과 정맥이 흐르고, 그리고 그 줄기로부터 다시 뻣은 산줄기들을 그는 정확하게 표현하였으며 이 줄기로부터 물이흘러 그 물을 마시고 그 정기를 우리는 느끼며 살았음을 그는 한권의 지도로 정확하게 표현한 우리나라 최초의 지리 학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구한말 일제에게 우리의 주권을 빼았기고 국토마져 유린 당하고 역사의 흔적까지 말살을 당하여 우리가 불렀던 대간과 정간 정맥이란 단어가 생소하게 멀어져 갔으니 ....

 그러나 우리는 국권을 회복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나  이땅에는 아직도 일본의 잔재로 남은 지명과 산줄기가 혼재하여 있으니 안타깝기 그지 없는 실정이다. 때문에 우리 산악인은 이렇한 사실들을 많은 이들로 하여금 알 수 있게 힘씀으로 인하여 우리의 완전한 독립이 이뤄지도록 해야 하는 것은 본분이라 하겠다. 산은 민족의 정기이다.  민족의 정기를 살리기 위해서는 산의 정기를 북돋울 수 있는 지명부터 바로 세워나 가야 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인하여 우리의 정기가 바로 설 수 있고 이로 인하여 산으로부터 산의 정기가 곧 우리의 정신적 근간으로 이어 질 수 있음은 거론할 여지조차 없는 것이리라.  이렇듯 우리는 우리의 정기가 바로 설 수 있음을 산으로부터 찾아야 할 것으로 여겨 진다. 우리는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의 잔재를 이땅에서 말끔히 지워나가야 되지 않을까!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까지 한반도의 등줄기와 같은 큰 골격을 이루고 있는 산줄기, 도상거리는 약1,400km, 이 산줄기을 우리는 백두 대간이라고 부르고 있다. 백두 대간은 한반도의 골격을 이루며 또다른 줄기를 만들고 있는데 이들로부터 한반도는 하나의 산줄기가 이어져 물길을 가르며  많은 골과 들녘을 만들며 우리 민족의 삼터를 일궜다고 볼 수 있는데....

 백두 대간이라고 하는 산줄기 개념은 우리민족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자연스레 터득한 지리관의 총화라고 볼 수있다. 그런데 이러한 지리적 개념이 변하고 말았던 것은 일제 침략시대를 거치면서 왜곡되고 잊혀져 왔던 것이다. 굴절의 시대로부터 압박받던 아픔의 시대는 헤어났지만 그들의 사고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던 우리의 현대사는 가슴아픈 사연으로 멍들었다.

 하지만 어떤가!  백두대간이 대학산악회를 중심으로 부활되기 시작하여 산악인, 환경운동단체, 일부 시민단체로 확장되어 오다가, 조금 늦은 감은 있으나 이제 정부까지 동참하여 민족정기 회복사업의 하나로 국토종합개발계획의 하나로 계획되어 졌으니 참으로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 겨울,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씨는 인사동 고서점에서 우연히 조선조 영조때 실학자였던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쓴 "산경표"라는 허름한 책을 발견했다. 대동여지도 복간을 준비하던 중 몇가지 의문에 고심했던 이씨에게 "산경표"는 문제를 푸는 열쇠와도 같았다.

"산경표"는 여암이 정리한 우리나라 산의 족보, 즉 백두대간과 백두대간에 속한 산들의 위치에 대한 기록이었다. "산은 강을 넘지 못하고 강은 산을 뚫지 못한다"라는 이 대전제로부터 백두 대간이라는 산줄기의 개념이 부활되기 시작했다.

이 대전제하에 백두 대간이라는 명칭의 부활에 첫 시위를 당긴 이들이 바로 산을 사랑하고 아끼는 산악인들이었다. 처음엔 대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산의 줄기를 찾아가며 가시밭과 언덕을 직접 몸으로 헤집으며 산줄기를 찾아서 나섰다. 그 결과 오늘의 대간길이 만들어 졌다.  


◎백두 대간에 대하여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그 시발하여 지리산 천황봉까지를 지칭하는데, 이는 우리 국토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산 줄기라고 할 수 있다.  이 길이는 약1,800km 이며 산 줄기의 높낮이는 높게는 2740m에서 낮게는 약100m까지 국토를 종단하여 이어진 산 줄기를 이룬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는 반토막으로 갈려진 이념의 대결 때문에 북녘땅에 위치한 대간길은 갈 수가 없는 실정, 때문에 휴전선 이남의 대간줄기는 진부령에서 지리산까지 인데 이 거리는 대략 670km 정도이다.  북에서 남으로 이어진 산 줄기는 남진을 하면서 그 높낮이가 계속하여 낮아지다가 마지막으로 솟은 지리산이 약 2000여 미터에 달하고 있다. 이는 북녘땅 백두산에서 발원한 산줄기가 함경도 지역까지는 근 2000여미터이상을 유지하다가 함경남도지방의 마유령[972m]에서 1000m지대아래로 내려앉아 중간중간 다시 솟구치며 힘의 강세를 주기도 한다. 금강산[1638], 설악산[1708], 오대산, 태백산, 덕유산 등이 일천오백미터이상으로 솟구치며 그 강세를 주고 있다. 이는 그 기개를 솟구쳐 강조함으로 끊어지지 않는 민족의 기상을 일깨우기라도 하는 듯한 형상이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이렇듯 대간의 줄기로부터 모든 산줄기는 그 곁가지를 넓혀 우리한반도를 만들고 그로 인하여 젖줄이되는 하천을 만들어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만들 수 있도록 자연적인 조건을 일궜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그 기운아래서 우리 민족은 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아름다운 옥토를 배경으로 이어온 우리민족의 주 인식체계가 되어 온 우리의 산하가 되었다. 이는 비옥한 농토를 일굴 수 있도록  이땅의 모든 산줄기가 백두산과 통한다는 개념으로 발전하게되었는데 그 사고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완성이 되었다고 보여진다. 이는 조선시대 이래로 우리 민족의 자연 인식 체계를 이루는 주요한 하나의 근간이되었다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틀은 이중환의 "택리지"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이익의 "성호사설"등에 잘 드러나 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들은 이런 사상의 기초하에 우리의 땅을 바라보고 그려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리라.


◎ 현대사에서 배웠던 산맥이라는 말은 누가 만들었나

 현재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산맥체계는 1903년 고토 분지로라는 일본인 지리학자가 제안한 지질학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에 대한 지질 및 광산조사에 혈안이 돼 있었다. 청일전쟁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교두보로 삼았고 특히 금에 관심이 많았다.

고토 분지로는 이 시기에 들어온 지리학자였다. 그는 교통사정이 열악했던 1900년대 단지 14개월 동안 국내 지질을 연구하고 돌아가 동경제국대학 논문집에 「조선의 산악론」과 「지질구조도」를 발표했다. 산맥 개념이 세워진 것도 이때부터다.

1904년에는 정치지리학을 전공한 일본인 야쓰쇼에이가 「한국지리」를 펴냈다. 그는 고토의 산맥지형도를 그대로 차용했다. 1905년 조선이 통감부체제로 들어가면서 교과서 내용에 제재를 받게 됐다. 1908년 지리교과서였던 「고등소학대한지지」에 야쓰쇼에이가 발표한 「한국지리」가 옮겨졌다.

산맥은 지질개념으로 지리를 연구한 한 개인의 연구결과에 불과하다. 백두대간이 단지 명칭상의 문제가 아닌 것도 이 때문이다. 백두대간은 지형의 개념이고 태백산맥은 지질의 개념이다. 그러나 우리는 산맥을 지형의 개념으로 지금껏 써오고 있다. 1906년 당시에도 정연호가 「최신고등대한지지」를 통해 산경표나 대동여지도를 언급하며 대간과 정맥을 말했지만 일제에 의해 금서가 되고 말았다.

일제는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된 대간과 정맥의 개념을 없애고 산맥개념을 도입해 우리땅을 여러갈래로 갈라놓았다. 고토의 산맥도에는 아예 백두산이 없다. 일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분야를 식민통치에 편한 체제로 바꾸면서 우리의 지형을 바꿔 놓았다. 일본이 지배하여 역사와 정신을 모조리 훼절하면서 백두대간의 개념은 뒤안으로 사라지고 그들이 지은 이름인 마천령, 함경, 태백, 소백 등의 산맥 이름만이 공식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 산은 물을 넘지 않는다는 대원칙

 조선후기의 실학자 신경준에 지어졌다고 추정되는 "산경표"에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산줄기 이음이 있다.

13정맥은 청천강을 기준으로 한 청북정맥과 청남정맥, 한강을 에워싸는 한남, 한북정맥, 금강을 두른 금남과 금북, 낙동강 좌우의 낙동, 낙남 정맥, 임진강과 예성강 사이의 임진북 예성남 정맥, 그리고 해서정맥, 호남정맥, 한남 금북 정맥, 금남 호남 정맥등이다.

대부분의 산줄기 이름을 강에서 따온 이유는 산의 노년기 산지역의 애매한 줄기 이어짐을 역으로 물흐름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이는 대동 여지도의 발문에 "산줄기는 분수령을 따르게 마련" 이란 뜻의 "山自分水嶺 " 이라는 말로 명문화되어 산줄기 가름의 대원칙이 있기  때문이다.


◎ 우리의 산줄기 체계는 1대간, 1정간, 13정맥이다.

  아래의 표와 같다.

  • 1대간 : 백두 대간
  • 1정간 : 장백정간이 있으며
  • 13정맥에는
    청북정맥, 청남정맥, 해서정맥, 임진북 예성남정맥, 한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한남금북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금남호남정맥 낙동정맥, 낙남정맥이 있다.

기존 대한민국 산의 분포도  ▶ 신 산경표에 따른 새로운 산줄기 개념도

신 산경표에 따른 산줄기 분류법


 하지만 어떻한가 산자분수령이라는 대 전제하에 산줄기 개념은 강을 아우르며 이어진다. 지금까지는 1대간과 1정간이 있고 13정맥으로 구분하고 있지않은가. 그런데 이를 조금 수정발전 시켜야 될 듯하다. 남한지방에 위치한 반쪽대간과 9정맥, 이 정맥의 개념이 조금 모호하게 설정되어 있는 듯 하다.

 모름지기 정맥은 대간에서 분기하여 산등성이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아우르며 강을 일구게하고 그 물은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한다. 이 산줄기를 일컬어 정맥이라고 우리는 칭하지만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있다.

 남한의 주 젖줄이라고 할 수 있는 5대강, 이강을 만드는 것이 산줄기지 않은가. 이들 산줄기가 물을 갈라서 만든 강 에는 한강,금강,영산강,섬진강,낙동강이 있다. 우리는 이를 기준으로 강을 가름하는 물가름을 하는 산줄기를 맥이라고 하고 그 줄기중에 가장 길게이어진 줄기를 정맥이라고 칭하는데 이정맥은 강의 하구 방향으로 이어져 강과 가정 근접한 가장 길게 이어지는 줄기어야 하며 바다로 함몰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정맥개념은 어떤가?

 먼저 금남정맥의 함몰점은 어떻한가? 금강의 낙화암이 있는 부소산에서 그 함몰점을 찾고 있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가. 부소산 아래로 지나는 강물은 금강이 아니란 말인가!

 금북정맥은 어떤가? 벽월산에서 금강과 전혀 관련이 없는 태안반도로 맥의 이음을 설정해 놓지 않았는가. 이는 정맥이라는 대전제에 합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호남의 젖줄인 영산강에는 어떤 문제가 있는가?  영산기맥이라고 지칭하는 전제는 잘못된 설정이다. 내장산에서 목포의 유달산까지 영산강을 만드는 산줄기는 분명 강을 아우르며 바다로 함몰하는 정맥의 전제에 합당하다. 그런데 이를 놓고 기맥이라고 한다면 조금 논리에 맞지 않는 것 아닌가! 그래서 호남정맥이라고 하는 산줄기는 수정을 해야 한다. 대간에서 분기된 호남정맥, 지도를 잘 살펴보면 금강과 섬진강, 그리고 영산강과 섬진강을 크게 가르고 남으로 내려 뻗다가 국사봉에 이르러 소위 땅끝기맥이라고 일컷는 분기점을 만드는데 이 땅끝기맥은 영산강을 아우르는 산 줄기가 된다. 이를 영산기맥이라고 한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영산남정맥이라고 불러야 될 것이다. 그러면 국사봉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줄기는 섬진강을 앉고 간다. 이 줄기를 섬진남정맥이라고 부른다면 틀린 말일까! . 상세사항은 지도를 보기 바라며....

 그렇다면 호남정맥은 어떻게 불러야 좋을까! 모두 강을 기준으로 강명이 들어갔는데 오직 호남정맥만 강의 명칭을 넣지 않았다. 왜 일까? 강을 3개나 끼고 있으니 강의 명칭을 넣기가 곤란해서 그랬을까! 그렇다면 정맥이라고 부르지 말고 정간이나 주맥이라고 하면 어떻했을까! 즉 호남정간 또는 호남주맥이라고... 그러나 산자 분수령이라는 대 전제가 있으니 지명 보다는 강명으로 통일 하는 것이 더 합당 한 것은 아닐까!  즉 영산남정맥이라는 가설을 세운다면 장흥땅 국사봉과 깃대봉을 지나면 바람재에서 분기하는 소위 땅끝기맥이라는 지점에서 해남군 매월리 깃대봉에서 그 마감을 해야 영산강을 안아 가는 줄기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땅끝기맥이라고 하는 곳과  분기되는 기존의 호남정맥 이어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이는 섬진강 상류인 보성강을 휘돌아서 섬진강 하류로 이어지니 이 부분은 섬진남정맥이라고 칭하면 합당하리라고 보인다.

  다만 정맥에서 정맥이 분기 한다는 전제가 문제이니 기존 영산남과 섬진남이 분기하는 곳까지를[대간에서 이 분기점까지] 섬진주맥이라는 개념을 넣어본다면.... 이 구간은 북으로는 금강, 서로는 영산강을 분기 하지만 남동방향으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섬진강을 아우르니 섬진강의 명칭을따서 섬진 주맥이라는 주명을 붙이면 좋을 듯하다. 역시 한남주맥도 3개강을 아우르지만 한강을 제일 많이 안으니 한남주맥이라고 칭하는 것이 가장 합당하지 않겠는가!

  이렇게 구간의 명칭을 정리 한다면 객관성이 있어 누가 뭐라해도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어떤 명칭을 정하는 것에는 그에 합당한 이치가 맞아야 되고 어느 누가 보아도 쉽사리 이해가 되고 타당성이 있어야 한다면, 기존의 명칭과 산맥은 당연히 수정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어느 누구는 역사도 발전한다고 했다. 과연 역사가 발전 하는 것 인지는 생각을 해 볼 문제겠지만, 그러나 이렇한 국가의 국토 지리지는 분명 더 합당한 방향으로 나가야 된다면 이를 발전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분명 그에 마땅한 타당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낙남정맥도 마지막 함몰점을 수정해야 한다. 용지봉에서 낙동강 하구뚝으로 이어지는 곳을 함몰점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기존의 동신어산은 용지분맥정도 된다. 그리고 기맥의 기준은 대간,정맥, 주맥에서 분기하여 정맥을 제외한 나머지 가장 길게 이어나가는 줄기로 최소한 거리가 약100km정도이상되는 산줄기를 우리는 기맥이라고 칭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있다. 기맥에서 분기한 또다른 산줄기가 100km를 넘는다면 어떻게 정의 해야 할까? 이는 주기맥을 제외한 부차적인 줄기이니 이는 지맥으로 분류 한다. 지도 참조.  

지맥은?  대간,주맥,정맥,기맥에서 분기한 그 주인된 줄기를 제외한 나머지를 칭 할 수 있는데 적어도 50km를 상외하는 줄기를 지맥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50km가 않 된다면 우리는 이를 분맥이라고 부르고  분맥은 기본적으로 30km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다.  이외나며지는  단맥으로 칭해야 할 것이다.

  모름지기 무엇을 함에 있어서는 그 기준이 있어야 하는 법, 이렇한 어떤 기준이 있다면 그 편리함은 배가가 되는 법 아니겠는가!

  지도를 참조 바라며...신 산경표에 따른 산줄기 개념도   글-산으로=

 위 내용에 대하여 이의가 있으면 많은 리플 부탁 드립니다. 산으로 드림

◎ 백두대간 관련 자료

山經表 / 申景濬 撰 ; 崔南善 編修. 朝鮮光文會, 大正2[1913].
산경표 / 조선광문회민속원. 1995. 6,000원
산경표 / 신경준. 푸른산, 1990
산경표 / 박용수. 푸른산, 1990.
산경표를 위하여 : 백두대간의 원상회복을 위한 제안 / 조석필.
  산악문화, 4,000원
태백산맥은 없다 / 조석필. 사람과 산, 1997.
71일 간의 백두 대간 : 길춘일의 단독종주기 /  길춘일. 수문출판사, 1996. 8500원
백두대간 종주산행(실전)  편집부 편. 조선일보사, 1997. 15,000원 
白頭大幹 관련 문헌집 / 산림청 편. 1996.
 왜곡된 산맥이름의 수수께끼를 푼다 / 박용수.
  월간 사람과 山 1990년 1월호
백두대간 따라 백두산까지 간다  / 월간 사람과 山 1990년 11월호부터 1년간 연재
산은 물이다-백두대간이란 무엇인가 / 이우형. 월간 山 1993년 6월호
신경준의 山水考와 山經表-고전순례 / 양보경. 토지연구 1992년 5/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