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종태바위, 재약산 그리고 얼음골 사진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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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덩이의 7월 4번째 산행기

 

 영남알프스 심종태바위와 재약산, 그리고 얼음골

 


           

       

       언   제?: 2005년 7월 30~31일(~) 비박

       ▶ 어디로?: 주계마을- 주암골-주막-재약산 수미봉-사자봉-얼음골(버스 & 히치)-주계마을-

                      심종태바위(back)-주암골

       누구와?: 수덩이 부부

       날   씨?: 맑음, 새벽 한차례 비.

 


 

     

           상북면 천황산에 위치한 심종태 바위...

           상북면 배내(上北面 梨川)에는 심(沈)종태바위라 하는 큰 바위가 하나 있다.

           천황산(天皇山) 높은 봉우리가 동쪽으로 늘어진 곳에 이 바위가 있다. 바위의 아래에는 수십명이

           들어갈 수 있는 자연굴이 하나 크게 나있어 이 굴에는 예로부터 도적들이 숨는 곳이기도 하였다.

 

           옛날 효성이 지극했던 심종태라는 사람이 부모의 제사에 쓰려고 송아지 한 마리를 길렀는데 하룻

           밤에 그만 송아지를 도적이 가지고 가 버렸다. 심종태는 도적이 몰고간 것도 모르고 송아지가 제

           발로 나간 줄로만 알고 이산 저산 찾아 헤맸다.

 

           이 바위굴에서 도적이 썩 나서면서 ”우리는 이 천황산을 거점으로 하여 밀양, 동래, 양산. 언양할

           것 없이 주름잡고 다니는 밤손님이야” 하였다. 심종태는 ”간밤에 송아지가 나가 버려서 찾아 헤매

           다 여기까지 오게된 것입니다” 라고 했다.

 

           도둑은 ”효성이 지극하구나. 그것도 모르고 우리가 송아지를 잡아먹었구나.” 심종태는, 이제는

           부모님 제사에 무엇을 놓고 지내나” 하고 한탄을 했다. 도둑은 ”우리가 아무리 밤손님이지만 어찌

           너같은 효자의 송아지를 잡아먹고 그냥 있겠느냐” 하며 두목은 금 삼십냥을 심종태에게 주더라는

           것이다”

 

           심종태는 송아지 두 마리를 사다가 한 마리는 잡아서 부모님의 제사에 쓰고 한 마리는 길렀는데,

           이 송아지를 길러서 나중에는 수십 마리로 늘어나 부자가 되었다 한다. 그 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심종태바위라 부른다.  -상북면 홈페이지-

 

 

 

 
 



         왜 배내골이라 했을까?  그답은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이라는 마을 이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천리(梨川里)...  예로부터 배나무가 많이 있었던 곳이라합니다. 효자 심종태바위가 있는 마을은 주계
         마을, 옛날 9년동안의 홍수에 배로 이곳에 다닌 곳이라 하여 주개 또는 주개듬이라하며, 혹은 배내 부락
         앞의 바위로 된 산 덩이가 떠내려오는 형상이라 하여 불리어진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부산일보 산행팀은 마을 옆 계곡이름이 주암골이라는 이유로 주암마을로 표기하고 있어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교통지옥을 방불케하는 휴가시즌을 맞아 원거리 산행은 자제하고 저번 주 아리랑릿지-파래소폭포에
         이어 이번에는 심종태바위를 주목적지로 해 답사해보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오후 2시 30분경, 아내에게 넌지시 반응을 떠봅니다. "오늘 2인용 빌라 처음으로 사용 해볼까나?" 
         "...." 아내는 아무런 답변이 없으면 반 승락이 떨어진겁니다. ^^
 
         이것저것 대충 준비하다보니 오후 3시, 언양시외버스터미널에서 배내골행 오후 4시 막차인 버스타기
         에는 아무래도 촉박해보입니다. 그래서 언양까지만 승용차로 이동해 환승하려했는데... 웬걸... 밀려드는
         차량에 양산I.C도 채 지나기전에 서행, 지체를 반복해 속이 타들어갈 지경입니다. 
 
         막상 언양에 도착했을 때는 닭 쫓던 개, 이미 버스출발 시각을  훨씬 넘기고 있습니다. 이젠 어쩔 수 없이
         산행들머리인 주계마을까지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가을 행락철이나 피서철이면 전국 고속도로가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하겠지만 언양-밀양간 35번 국도, 이곳 또한 장난이 아닙니다. 보통때는 부산에서 석골사까지도 1시간 남짓하면 도착할 곳이 시간이 아닌 그야말로 세월을 운운해야 할 교통지옥으로 변해버립니다.
 

 

 


 

 오후 5시, 석남사앞 운문령 갈림길을 지나자 그나마 교통적체가 풀려 심종태바위가 내려다 보이는 배내재에 이릅니다. 운문령을 넘어 생금배리계곡이며 문수산의 계살피계곡 등 운문댐 주변까지 피서객과 차량으로 북새통을 이룰 것이 눈에 선합니다.
 
주차를 어디에 해야 회수하기가 좋을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어렵쇼! 서너명밖에 태우지않은 배내골행 버스가 바로 옆으로 휑하니 지나치고 있습니다.   운좋은 과부는 넘어져도 가지밭에 넘어지고 운 나쁜 과부는 꼭 자갈밭으로 넘어진다는 한산의 산객 진맹익님의 표현이 생각납니다. ^^; 
 
잘못하다가는 심종태바위 정상부 능선에서 어둠을 맞이하겠다 싶어 지체없이 배내골로 내리다 우회전, 주계마을 차가 더이상 들어갈 수 없는 막다른 길옆에 공간이 있어 주차합니다. 주차료 공짜! 운 좋은 과부...
 
 
 
 
 

 
 막다른 음식점을 겸한 제법 너른 주차장에는 이미 피서객 차량들로 한 가득입니다.(주차료 소형 3천냥)
이 곳 정보에 무지한 수덩이는 화장실 옆으로 서있는 이정표만 따르다보면 계곡을 건너 심종태바위로 오르는 등로가 나올 것이라 착각하지만 결과적으로 더 잘된 일 일지도 모릅니다. 
 
심종태바위로 재약산으로 오르려면 이동전화중계탑을 지나 계곡 합수점 건너편 초입에 리본이 달려있습니다.
그후 등로는 뚜렷해 급경사지역을 40분정도 올라 외길 능선을 따라가면 재약산 아래 쉼터와 연결됩니다.    
 
 
 
 
 


 
 음식점 좌측 간이화장실 옆으로 이정표가 선 산사면의 등로를 따라 하산중인 산객 몇 분도 보여 아무런 의심없이 오릅니다. 마주치는 분들마다 인삿말은 예전부터 습관화된 기본 에티켓.  걱정스런 눈빛 반, 부러운 시선 반. 산객분들은 한결같이 한마디씩 던집니다. "아니... 지금 오르는 겁니까? 이런 늦은 시각에?? "  10여분을 오르자 그런 말을 묻는 분도 없어졌습니다.
 
 
 
 


 
 등로 좌측 계곡밑으로 물놀이 한창인 어린아이들의 즐거운 함성이 멀어져갈 무렵 심종태바위의 암두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띱니다. 과연 암봉 어디쯤에 산적들이 머문 동굴이 있을까 궁금증은 더해갑니다.
 
 
 
 


 
 50여평 정도의 넓찍한 암반 윗부분에 피서객으로는 주암계곡 최상단에 위치한 팀, 건너편으로 심종태바위로 오르는 길이 있지 않을 까 두리번 거려보지만 등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뒤늦게 지도를 펼쳐보니... 아뿔사! 그제서야 초입부터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습니다.
 
 
 
 

 

 
 '그려... 오늘은 탐색전으로만 만족하고 다음번에 표충사에서 올라 가보지 뭐... '
이 때까지만해도 심종태바위로의 산행은 물건너간 듯 보였습니다.
 
 
 
 
 


 금정산 오르기보다 수월한 등로가 계곡따라 길게 이어져 영남알프스가 이런 널널한 구간도 있었나 싶습니다.  아내에 물으니 역시 그러하다합니다.
 
 
 
 


 오늘 밤 재약산 정상에 서면 별똥별 볼 수 있을까? 수덩이는 볼 수 있다는 쪽에, 아내는 상반된 입장을 가져 만냥 내기 할까하는 농을 걸며 걷다보니 외진 농가 한채를 만나고 두번째 환하게 밝아지는 묵은 밭길을 통과해 계곡 숲속으로 등로는 계속해 이어집니다.
 
 
 
 
 

 
 정상에는 샘이 없으니 등로옆 계곡으로 내려 아내가 저녁식사를 간단히 준비하는 동안
상류쪽으로 조금 올라 담아온 자그마한 이끼폭포(?)는 주암계곡이 주는 선물입니다.
 
  
 
 
 

 
 7시 20분, 물길이 끊기는 계곡 상류를 거슬러 올라야하는 10분정도 가파름을 제외하면 주막 쉼터까지 아주 여유롭게 오른 셈입니다. 
 
 
 
 

 
 7시 40분경, 아무도 없는 주막 쉼터는 졸찌에 수덩이부부만을 위한 산상별장으로 변합니다.  춥지도 덥지도 않는 적당한 기온에 기초공사 완벽한 평상위로 수분만에 지으진 2인용 별장, 식탁위로 캔맥주 2개에 동동주 한병. 나무가지에 걸친 헤드렌턴으로 은은한 조명까지...  비박으로 계획해 산을 오르다보니 이런 의외의 호사도 누리게 됩니다. 
 
 
 
 


 풀벌레 울음소리 음악되어 더이상 부러울게 없는 파티장입니다. 아쉬운 한가지를 들라치면 밤하늘에 속삭이는 별빛을 볼 수 없다는 점. 어둠에 취해 이야기에 취해 두어시간 보내다... 별장 속으로 쏙!
 
일출보려면 4시정도에는 일어나야하는데 침낭속의 아내는 엎치락 뒤치락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다 자정을 넘겨 깜빡 잠이 드는데, 텐트위로 후두둑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흠짓 놀라 일어나보니 새벽 1시쯤, 다행히도 10여분 그러다 그치고 또다시 안정을 되찾습니다.
 
 
 
 
 

 
 뻐꾸기 벽시계를 대신한 이름모를 산새의 지저귐소리에 눈을 떠보니 이미 5시를 넘기고 있습니다. 아침식사 황급히 끝내고, 아니 머문듯 주변을 정리한 후 재약산으로 향하니 이미 일출은 시작되고있어 마음이 바빠집니다.   
 
 
 
 

 
 일출그림을 놓칠세라 뛰다시피 오르니 금새 온몸은 땀으로 뒤범벅, 982봉은 벌겋게 물들어 있습니다.
 
 
 
 
 

 

 헉헉헉... 일출속도는 왜 그리 빠른 겨? 숲속등로에서 보는 일출은 원했던 모습이 아닙니다.

 
 
 
 


 
 재약산 수미봉 정상비 위로 송골매녀석이 마중 인사나왔습니다.
 
 
 
 


 
 재약산 사자봉이 우측으로 보이고 아스라히 보이는 능동산, 신불능선이 황금색 산그리메를 이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작년 가을녘에 이곳 근처 아내와 비박 후 새벽에 바라보았던 것과는 비교를 할 수없는 장쾌한 모습입니다.   
 
 
 
 


 
 사자평 건너편으로 코끼리봉, 재약봉으로 내달리고 싶지만 오늘 가야할 길이 아니라 아쉽기도합니다.
 
 
 


 
 문수봉뒤로 우뚝 선 영남알프스 최고의 전망대라 일컫는 향로산. 해발 976m. 그리 높지않고 그렇다고 손쉽게 오를 수 있는 산도 아닌 향로산에 서면 마치 영남알프스를 병풍처럼 세워놓고 그 진면목을 요리조리 감상하는 대(臺)인 듯합니다. 그 뒤편으로는 밀양댐. 향로산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울산 부부산객 '오투님' ^^ 
 
 
 


 
 가을이면 바람불어 은색과 금빛이 어우러져 물결칠 1백 20만평에 이른다사자평...
수미봉을 처음 오른 사람은 이곳이 왜 알프스라 불리는지 깨닫고 고개를 끄덕이게 될것입니다.
 

사자평에 가득 뒤덮인 억새의 무리가 멀리 신불산 너머로 떠오르는 일광으로 혹은 주황빛으로 쓸쓸히 물든 석양빛으로 출렁거리는 광경을 '광평추파' 라 부르는 그 억새의 천국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인묵객은 이 억새천국에는 반드시 바람부는 가을 날, 아침이나 저녁에 들러야 한다했나봅니다. 떠오르는 햇빛은 억새가 돌아누울 때마다 찬란한 황금빛으로 번쩍일 것이며, 저물어 가는 석양은 억새가 뒤척일 때마다 또한 황금빛으로 빛날 천국으로 변할 터이니.

 
 
 
 
 


 
 바로앞 바위암봉이 관음봉, 그 뒤쪽으로 문수봉... 그럼 고암봉은 어딜까? 혹시 코끼리봉을??

표충사를 중심으로 사방에 펼쳐진 재약 5봉은 밀양 울산 양산시의 경계를 중심으로 넓게 펼쳐진 재약산역에 속하는 5개의 봉우리를 말합니다. 재약산 사자봉(載藥山  獅子峯 ·1189m), 수미봉(須彌峰·1115.5m), 향로산(香爐山·976m), 필봉(筆峰), 재약봉(약무덤953.8m)이 바로 그것. 여기에 관음봉(觀音峯), 문수봉(文殊峯) , 고암봉 (敲岩峯)을 추가해 '재약 8봉'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7시 30분, 거의 1시간동안이나 수미봉에서 머물다 사자봉으로 향합니다. 작년 이곳을 지날 때 넓은 초원을 가로질러 뛰어가던 고라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천황재 쉼터에서 비박했었다는 몇분의 산객을 만납니다. 그 산객은 우리더러 "일찍도 올라오셨구만요?" ^^;;
 
 
 
 


 
 


 

 사자봉으로 오르며 뒤돌아본 재약산 수미봉입니다. 보고 또다시 돌아봐도 정겨운 모습입니다. 바람가득해 풀잎이 드러눕는 가을 날, 또다시 찾아와 그들과 함께 한포기 와초(臥草)가 되어 보리라.

 

 

 

 


 
이 곳 일대 본래의 이름은 재암산(載巖山) 또는 재악산(載嶽山)으로 불리다가 서기 829년(신라 흥덕왕 4년) 인도의 스님 황면선사가 인도로부터 석가모니 진신사리(眞身舍利)를 가지고 와서 이 산 도장(절)에 봉안할 때, 흥덕왕의 셋째 왕자가 병을 얻어 전국의 명산 약수를 찾아 두루 헤매다 이 곳에 이르러 영정약수(靈井藥水: 진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표충사 경내에 영정약수라 표기된 약수터 있음.)를 마시고 병이 낫게 되었으므로 부왕의 특사로 현재의 표충사 자리에 큰 가람을 지어 절 이름을 영정사(靈井寺),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부르게 되었다합니다.
 
 
 



 용맹스런 숫사자 갈기 사이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정수리에 올라서다 보면 이곳은 또 돌의 천국임을 알게 됩니다. 곳곳에 염원을 잔뜩 담은 돌탑들이 서 있어 드디어 억새 천국을 빠져 나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일망무제... 사자봉에 오르면 가지산으로부터 이어져 능동산을 거쳐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의 힘찬 줄기가 건너다 보입니다. 
 
 
 


 
 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첩첩하고 그 산들이 갈라놓은 그만큼 깊은 계곡들이 또한 겹겹하니 또 하나의 세계속에 푹 빠져듭니다. 허나 정상에 올라서면 여전히 의문 남는 것 하나 있으니 밀양시가 불과 3년전, 2002년에 세운 정상비에 조각된 글귀입니다. 천황산...
 

 

 



 천황산인가? 아니면 재약산 사자봉인가?
울산산객 이양훈씨는 모 신문사에 투고한 "천황산의 미스테리"란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울산과 밀양 경계에는 천황산天皇山이 있다. 해발 1,189미터의 이 천황산은 영남알프스의 20여 고봉들 중에도
명산으로서 산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산이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간월재와 신불산이, 서쪽으로는 밀양분지와 화왕산이(구, 화악산 華嶽山), 남쪽으로 재약산과 낙동강이, 북쪽으로는 얼음골과 다른 알프스의 연봉들이 이어져 있다.
 
가을이면 억새평원이 장관이고, 정상에서 입담 좋은 L씨가 늘 커피를 팔고 있는 산 천황산......
샘물식당의 주인 정지용씨의 인심은 얼마나 후한가!

이 산이 허구많은 산이름 중에서 왜 하필 천황산인가?
동국여지승람에는 현재의 재약산과 묶어서『재악산載嶽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이름을 일본인 지방서기가 지었다고 전하는데 일본인이 명명한 확실한 기록은 나타나지 않고 일제시대 축산업협동조합의 산이름 기록에 처음으로 천황산 산이름이 등장한다고 한다.
의문은, 일본인 말단관리가 자신들이 하늘처럼 섬기는 천황의 존명을 조선의 산이름에 감히 붙일 수 있을까?

우리말 회원들이 지은 '재약산 사자봉'이란 이름은 타당한가? 천황산아래에 펼쳐져 있는 사자평이 사기와 자기의 평원이라서 사자평이라는 유래가 타당한가? 다른 유래는 없을까?

 

 
 

 

 천황산 사자평에 흩어져 있는 사적129호 천황산도요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나라 도자기들 중 가장 순박한 무늬를 새긴 도자기 파편은 누가 언제부터 시작한 도작(陶作)의 자취인가?
그들은 왜 이토록 외로운 해발 900미터의 산정에 올라와 도자기를 구워야 했는가?

천황산의 우리말 찾기는 옳은가?
산 주변 마을사람들에 따르면, 『일제가 들어오기 전부터 천황산』 이라는 증언도 꽤 있다.
그들에 따르면 태초부터 천황산이다.

천황은 '하늘의 황제'인데 '하늘의 황제'는 꼭 일본국왕인 천황뿐인가?
우리 한민족에게도 하늘의 황제 천황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천황산에서 바라보이는 밀양강과 천황산의 관계는?  인근의 가지산과 천황산의 관계는?

고대 신라와 가야국 사이에 있는 산으로 우리 고대사의 주요사건들이 이 주변에서 발생했는데 이 사실을 사람들은 아는가?

영남알프스중에서 가장 넓은 평지를 품고 있어 고대인들이 머물 가능성이 큰 천황산....
천황산의 미스테리를 짧은 시간에 짧은 지면 위에 어찌 다 적을 수 있겠는가......
 
 

 

 

 




 
 
 
 
 

 
 9시, 심한 너덜길로 이루어진 얼음골로 내릴 차례입니다. 3년전에 이곳으로 딱 한번 내린 적이 있는 길입니다. 
 
 

 
 
 그 때는 보였어도 가슴으로 보지않았던 백운산의 모습이 확연합니다.
 
 
 
 


 

 30여분 긴 너덜을 조심스럽게 내려오자 동의보감 허준이 그의 스승 유의태 시신을 해부하였다는 동굴, 동의굴이 우측으로 보여 들어가봅니다. 

 

 

 

 

 

 냉기는 커녕 햇살이 내부 깊숙한 곳이 들어와 더운 공기만 가득합니다. 세월이 흘렀다곤 하나 터무니 없는 동굴에 이름붙였다는 느낌이고 얼마전 들렀던 운문산아래 제 2얼음굴이 진짜 동의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동의굴부터는 관광객들을 위한 돌계단이 가지런히 놓여져 걷기 수월할 지점에 이르러 한통의 전화가 옵니다.
"수덩씨. 지금 어디쯤이고?"  8월 1일부터 휴가인 친구 석촌입니다. 이틀 전 술좌석에서 만나 행선지를 밝혀 올 수 있으면 오라고했더니 당장 오겠다합니다. ^^
 
그 한통의 전화에 얼음골로 내려 호박소-오천평반석-능동산-주암마을로 원점회귀하려던 계획이 수정되고 맙니다. 일단 주암마을 위치를 알려주어 그곳에서 만나기로 하자 느긋했던 발걸음이 다소 빨라집니다.       
 
 

 



 

  <밀양의 神秘>라고 불러오고 있는 이곳은 약 3,000평쯤 되는 돌밭(石田)으로 해마다 6월 중순부터 바위틈새에서 얼 음이 얼기 시작해서 더위가 심할수록 얼음이 더 많아 三伏 시기가 되면 그 절정에 이른다합니다. 반대로 겨울철에는 바위틈에서 얼음대신에 김이 올라오고 계곡을 흐르는 물도 얼지 않아 1970年 4月 천연 기념물 제224호로 지정 되어 있는 곳입니다.

 

KAIST의 송태호교수는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이유가 자연 대류 때문이라며 비밀의 열쇠는 얼음골 골짜기에 쌓여 있는 화산암이 쥐고 있다고 합니다.

 

화산암은 용암이 분출돼 급격하게 식으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구조가 치밀하지 못하고 미세한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다공성의 돌이라며 계곡에는 이러한 돌들이 얼키설키 쌓여 있어 길다란 돌무더기(너덜)에는 공기가 큰 저항 없이 통과할 수 있다합니다. 그런 까닭에 겨우내 차가워졌던 너덜 내부의 공기는 계절이 바뀌어 외부의 온도가 올라가면 상대적으로 밀도가 높아져 그 밀도차로 인해 너덜 내부의 차가운 공기가 너덜 밖으로 흘러나오면서 찬바람을 내고 얼음을 얼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산대 문승의교수는 얼음골의 비밀을 달리 해석하는데, 그것은 화산암이 아니라 지하수가 지니고 있다는 기화열설을 제시합니다.

 
일사량이 극히 적고 단열효과가 뛰어난 얼음골의 지형특성상 겨울철에 형성된 찬 공기가 여름까지 계곡주위에 머무는 상태에서 암반 밑의 지하수가 지표 안팎의 급격한 온도차에 의해 증발되면서 주변의 열을 빼앗아 얼음이 언다는 것입니다.
 
 
 

 

 좌우지간 이 일대는 다른 곳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범한 너덜지대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한눈으로 알 수 있습니다.

 

 

 


 

 

 석촌과 만나기로 한 약속에 마음은 급하지만 내려가는 길에 있는 가마불폭포를 지나칠 수는 없는 일입니다.

 

 

 

 
 가마불폭포를 끼고 있는 암봉이 보입니다.
 
 
 


 
 암가마불폭포. 아주 좁은 협곡에 수량이 적어 폭포라하기에는 미흡합니다. 
 
 

 
 숫가마불폭포 역시.. 물길을 능선 뒷편 주암계곡으로 다 빼앗겨 버리니
이 두 폭포는 언제나 메마른 모양입니다.

 


 



 
 천황사 바로 옆 계곡은 싸늘한 바람 불어 피서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으나 경내는 한산하기만합니다.
천황사 대광보전에 모셔진 8세기에 제작된되었다는 보물 1213호 천황사 석불좌상을 둘러 보고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11시 30분, 얼음골을 빠져나오자 목줄기를 터억 내리치는 열기, 호박소로 가려던 마음이 삭 가십니다.
석촌의 전화가 없었다면 싫던 좋던 호박소로 가야할터인데 핑게꺼리가 생겼으니 쾌재를 부르며 쭈쭈바 한개씩 빨며 석남사행 버스를 기다려 12시에 탑승, 석남사터널을 지나 배내재 갈림길에서 하차... 부산에서 한참 오고 있을 석촌에 전화를 겁니다.
 
"석촌아. 오디쯤 오고 있냐?" ... "지금 언양인데 차가 막혀 도저히 안되겄따. 우리부부는 다른데로 가야겄네..."
 
오잉?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어쨋거나 이젠 차량을 회수하러 주암마을로 가야합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아스팔트길을 꾸적꾸적 올라가다 배내골 신불자연휴양림으로 가는 마음씨 좋은 아저씨차를 히치해 주계마을 입구까지 그럭저럭 도착합니다.
 
 
 

 
 주계마을로 내려 가던 중 아내가... "집으로 가기에는 이른데 숙제 마저 마치고 갑시다. 배낭 한개만 꾸려서..." "어?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 그카자 모..." 그래서 포기했었던 심명래... 아니 심종태바위를 오르게 됩니다. ^^
 
 
 


 
 친구 석촌의 전화가 아니었으면 또 언제 오를 지, 미루어 둘 수 밖에 없었던 숙제를 해 치울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 바로 이런 것인가 봅니다. 석촌 고마버... 
 

 




 
 심종태바위 가는 초입은 이곳 마을분께 알아내었으나 동굴위치는 미처 여쭈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곳 마을 주민은 이 바위봉을 주계봉으로 부르고 있다하고 마을에서 왕복 1시간 30분거리라합니다.
 
정상까지는 마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상당한 된비알길이고 바람 한점 없어 찜통이 따로 없습니다. 두어번을 쉬어
비교적 오르기 수월한 두군데의 로프 구간을 지나니 비로소 조망이 틔입니다.
 
 
 

 


 

 2번째 로프구간에서 내려다 본 주계마을입니다. 앞으로 보이는 덤덤한 봉은 배내봉.

 

 

 




 
 드디어 1시간동안 올라 심종태바위(799.5m) 정상에 섰습니다. 정상부에 올랐으니 이제 산적이 머물렀다던 동굴 찾을 차례입니다. 능선을 따라 진행해봅니다.
 
 
 

 




 
 두번째 전망대에서 주암골의 전모와 그 뒤로 사자봉을 봅니다. 이 능선을 따라 앞에 보이는 982봉만 넘으면 하룻밤을 보내었던 주막이 나올 것입니다. 도대체 동굴은 어디쯤에 있능겨? 그러다보니 어영부영 982봉 바로 아래까지 진행하게 됩니다. 
 
982봉 가까이서 주암골로 곧장 내리는 등로는 없을까 두리번대는 순간 한무리의 안내산악회를 만나 동굴 위치와 주암골로 내리는 등로를 여쭈니, 계곡으로 내리는 등로는 전혀없고 동굴은 추정만 할뿐이지 그들도 모른다합니다.  
 
 
 




 
 할 수 없이 동굴답사는 유야무야되어버리고 그들을 따라 올라왔던 길을 되내려 심종태바위의 전설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게 됩니다.